『 효창공원 그곳이 알고싶다 』
《제1탄》100년 전의 효창공원
📜기록 속 사진으로 만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효창공원의 원래 이름은 ‘효창원’이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와 밤나무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습니다.
이 곳에는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큰 아들 문효세자와 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그리고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와 그의 딸 영온옹주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 일본군부대의 불법 주둔을 시작으로 그 가치와 의미가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국권을 피탈한 일제는 1921년 효창원의 숲을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고, 문효세자 묘를 빙 둘러 감싼 골프코스를 만들었습니다.
1924년에는 효창원의 일부에 유원지가 조성되었고 일제에 저항해 싸운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비밀작전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일제는 패망 직전 1945년 3월, 효창원에 있던 왕실의 묘를 모두 서삼릉(현 경기도 고양시)으로 강제 이장하였고
그렇게 효창원은 본래의 역사성과 규모, 가치를 잃은 후 지금의 폐쇄된 섬과 같은 ‘효창공원’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조선왕실의 묘원이었던 효창원이 오늘날의 효창공원이 되기까지
어두운 역사 속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상실하고 회복하기를 반복했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세요.
『 효창공원 그곳이 알고싶다 』
《제1탄》100년 전의 효창공원
📜기록 속 사진으로 만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효창공원의 원래 이름은 ‘효창원’이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와 밤나무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습니다.
이 곳에는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큰 아들 문효세자와 세자의 어머니 의빈 성씨,
그리고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와 그의 딸 영온옹주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직전 일본군부대의 불법 주둔을 시작으로 그 가치와 의미가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국권을 피탈한 일제는 1921년 효창원의 숲을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고, 문효세자 묘를 빙 둘러 감싼 골프코스를 만들었습니다.
1924년에는 효창원의 일부에 유원지가 조성되었고 일제에 저항해 싸운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비밀작전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일제는 패망 직전 1945년 3월, 효창원에 있던 왕실의 묘를 모두 서삼릉(현 경기도 고양시)으로 강제 이장하였고
그렇게 효창원은 본래의 역사성과 규모, 가치를 잃은 후 지금의 폐쇄된 섬과 같은 ‘효창공원’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조선왕실의 묘원이었던 효창원이 오늘날의 효창공원이 되기까지
어두운 역사 속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상실하고 회복하기를 반복했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세요.